8세기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배경으로 그랜드 오케스트라가 연주되고 있었다. 이곳은 당시 아름다운 석탑과 사원들로 가득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감을 지닌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보로부두르’라고 불리는 거대한 불교 사찰이다. 이 사찰은 단순히 돌과 벽돌로 이루어진 건축물을 넘어, 당시 자바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재능이 집결한 최고의 걸작이었다.
보로부두르 건축의 원동력은 복잡하고 매혹적인 역사 속에 숨겨져 있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던 샹가 왕조는 힌두교 신앙을 깊이 믿었지만, 동시에 불교가 자바섬에 전파되고 점점 영향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샹가 왕조의 수장인 라켄타마 왕은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가? 그는 불교를 후원하며 대규모 보로부두르 사찰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사회적 통합과 문화 발전을 목표로 하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보로부두르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당시 자바 사회의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를 반영하는 거대한 무대였다. 건축에 사용된 약 200만 개가 넘는 돌들은 전국에서 운반되었으며, 수천 명의 장인들이 이에 참여했다. 그 결과는 놀라운 예술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사찰이었다.
보로부두르 건축의 주요 특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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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약 123m x 123m, 높이 42m | |
형태: 거대한 마네라(마네리) 구조와 다양한 부조로 장식된 6개의 정사각형 대제와 원형의 위층으로 구성 | |
수많은 불상과 부조: 불교의 교리를 표현하는 다양한 장면을 담고 있으며, 당시 자바인들의 생활 모습, 의복, 문화를 보여준다. |
보로부두르는 인도네시아만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신라 시대에는 불교가 국가 이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외세와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이 과정에서 보로부두르 건축 기술과 예술적 스타일이 전해지기도 했다.
신라 천년대에 건설된 석굴암은 보로부두르의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진다. 둘 다 거대한 불상과 복잡한 조각, 그리고 화려한 색감을 통해 불교 미술의 정수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문화 교류는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예술적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지역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보로부두르의 운명은 쉽지 않았다. 무역 경로가 바뀌면서 자바 문명이 점차 쇠퇴하면서 보로부두르는 잊혀져 버렸다. 수백 년 동안 jungle 속에 묻혀 있는 채, 거대한 신비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이 보로부두르를 발견하고 복원 작업을 시작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보로부두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며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감상하고 있다.